우리의 연애는 손편지로 시작되었다.
내가 아내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준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
1997년 4월 27일에 처음 편지를 줬으니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가?
27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으니 얼마나 많은 편지들이 쌓여있겠는가.
편지들이 서랍 한가득 쌓여있다.
대부분의 편지들은 연애할때 썼던 편지들이지만
결혼 후에도 몇 번은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아내가 회사에 다니고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내는 종종 학교로 편지를 부치기도 했었다.
수업을 하시기 전에 선생님은 나에게 편지가 왔다면서 전해주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반 아이들이 다들 부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다닐 때도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지만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것은 아마도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일 것이다.
군대에 있는 2년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정말 사람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그때 이런 편지 한 통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나는 하루하루 아내의 편지만 기다렸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위문편지도 많이 기다렸고, 또 많이 받았다)
나는 자대에 배치받기 전에 대구에 있는 50사단에서 훈련받았는데
논산 훈련소가 아닌 대구로 가게 되어서 조금 의아했었다.
대구에서 신병훈련을 마친 나는 자대 배치를 경북 영덕으로 받게 된다.
안산에 살던 내가 경상북도 영덕에 가서 군생활을 하게 되다니.
안산에서 영덕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그래서 편지가 더디게 온 것일까.
편지 오는 날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그때 목이 너무 빠져서 거북목이 되어버렸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아내는 편지를 부칠 때 우리 사진이 들어간 우표를 제작해서 보내주었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아내와 함께 에버랜드로 데이트를 갔을 때인데
우표에서 아내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는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편지지를 살 수가 없었다.
내가 군대에서 쓴 편지들은 규격화되고 일반적인 편지지와 편지봉투가 대부분이다.
편지지가 다양하지 않은 대신에 나는 그림을 많이 그려서 보냈다.
편지 봉투의 앞면과 뒷면에 여러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내가 그렸던 그림들은 대부분 군생활 모습들이다.
나는 T.O.D병으로 있었는데
쉽게 말하면 해안 경계 근무를 서는 것이랄까.
편지가 빨리 가기를 바라면서 '빠른우편'으로 보냈다.
물론 이렇게 쓴다고 해서 진짜 '빠른우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빠른우편' 딱지를 붙여야 진짜 빠른우편이다.
아마 조금 더 비쌌었나?
우표를 2개 붙이면 더 빨리 갔던가?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편지를 배달해 주시는 우체부 아저씨에게도 감사인사를 꼭 한다.
편지를 빨리 보내달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군대에 복무 중일 때 받은 편지들을 보니 정말 어떻게 군생활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제대하고 시간이 꽤 지나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정말 그 당시에는 위문편지로 버텼던 것 같다.
신병 훈련소를 퇴소하고 이병이 되어 자대에 배치를 받게 된다.
신병 훈련소에서는 짝대기 하나 단 것도 엄청난 일이었는데
막상 자대에 가보니 제일 꼬라비에 제대까지 천리길이다.
이때 제일 걱정했던 것이 뭐였냐면,
'혹시 편지가 신병훈련소로 가면 어떻게 하지?'
자대 주소를 아내에게 알려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철자하나라도 틀리면 안 돼!
혹시라도 틀릴까봐 조심하며 또박또박 자대 주소를 알려준다.
자대에 있을 때 편지가 더디 오자
'혹시 주소를 잘못 알려줬나?'
'신병훈련소로 편지가 잘못 갔나?'
이제 일병이 되었다.
와~ 진짜 어떻게 일병을 달았지
짝대기가 두 개가 된 것이다.
이때도 아내는 꾸준히 편지를 보내주었다.
벌써 상병이다.
지금이야 '벌써'지만 그때는 '아직'이다.
상병이 되어서도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내의 편지.
짬을 먹고 나서는 나도 슬슬 예쁜 편지지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빠른우편으로 아내에게 편지를 섰다.
내가 상병일 때가 2003년이다.
편지 봉투에 2003년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드디어 병장이 된 나.
편지는 병장이 되어서도 꾸준히 썼던 것 같다.
우체부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감사 인사도 빼놓지 말자.
와~ 드디어 전역을 22일 앞두고 있다.
그리고 말년 휴가는 10일 남았다고 써 있다.
위에 있는 편지들이 아마 마지막 위문편지였을 것이다.
휴가를 다녀오고 군대 복귀 후에 바로 제대를 했기 때문.
물론 군대를 제대했다고 해서 편지를 그만 쓴 것은 아니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참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다.
지금 읽어보면 재미난 글들이 참 많은데
시 같은 것도 적혀 있고, 낙서도 많이 끄적여 있다.
하늘에 소중한 건 별이고,
땅에 소중한건 꽃이고,
나에게 소중한 건 누나♥
(ㅋㅋㅋ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보고 쓴 건지)
눈이 오는 그림에
눈~와 (누나)
편지를 쓰고 나서 P.S(추신)를 꼭 적었다.
우리나라 동쪽에 있는 바다는 동해
2005년도는 경기도 방문의 해 (아마 2005년에 쓴 편지 같음)
선생님은 나에게 공부해
믿음이는 누나를 너무너무 많이 많이 사랑해.
(라임 맞추기?)
딸기 넣으면 딸기 우유
초코 넣으면 초코 우유
믿음인 누날~ 알럽우유 (ㅋㅋㅋ)
지금 보면 신기한 편지지와 편지 봉투들도 많다.
뭔가 90년대 감성의 편지지라고 해야 할까?
세기말 감성의 편지지다.
나는 손글씨 쓰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편지지에 썼던 글씨를 보면 글씨도 나름 예쁘게 잘 썼다.
이런 편지지도 있다.
아! 이건 편지 봉투다.
나는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내가 미국 샌디에고에서 보낸 편지인데
태평양과 대륙을 건너서 아내에게 도착한 편지다.
베트남에서도 편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해외에서 보내는 편지는 나름의 특별함이 있다.
가끔 장난을 치면서 보낸 편지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이렇게 되어 있다.
보내는 사람 : 천재 믿음이
받는 사람 : 바보 멍청이 누나
지금 보면 식겁할 편지들도 있다.
아내 생일에 쓴 편지인데
발신인에 이렇게 쓰여 있다.
'자기 생일을 맞아 더 열심히 놀 것을 다짐하는 착한 남편이가'
그리고 수신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남편이 신나고 재밌게 놀아야 즐겁고 행복한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기에게♥'
내용도 읽어 보면, 열심히 놀겠다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참 많은 편지들을 썼다.
그러다 보니 예쁜 편지지와 예쁜 편지 봉투를 모으는 것도 하나의 취미가 된다.
이것도 편지지다.
뒤쪽에는 글씨로 가득한데
이런 편지지의 단점은 글씨를 상당히 많이 써야 해서 팔이 아프다는 것이다.
지금 보면 참 예쁘게 꾸미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편지지도 그냥 보낸 법이 없다.
정말 편지를 많이도 썼다.
편지를 다 읽어보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엽서를 보내는 이벤트가 종종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레일 바이크를 탈 때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아마 '느린 우체통'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촉박해서 몇 줄 적지는 못했다.
방콕으로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엽서를 보내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편지를 적을 수 있었다.
엽서는 100일 정도 지나야 받아볼 수 있다고 하길래
날짜를 계산해 보니 결혼 12주년 기념일에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리 결혼기념일 축하 메시지도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2018년 6월 17일에 엽서를 보냄)
이렇게 유명 영화의 한 장면이 담긴 엽서들도 많았는데
아내와 함께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이라 영화 엽서에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알약 편지 (일일이 알약을 열어야 해서 귀찮다)
'샌드위치 킹' 편지.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든 입체 편지까지.
정말 다양한 편지들이 많다.
'샌드위치킹'은 버거킹을 모티브로 한 편지지 같은데 안에는 우유와 샌드위치 편지지가 들어있다.
'스타뚜'는 '스타벅스'를 모티브로 한 거겠지?
커피 편지지와 영수증 편지지가 들어 있다.
이렇게 뒷면이 편지지로 되어 있거나 펴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대신 순서를 잘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머스타드 소스' 편지지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순서를 적어 놓은 것이다.
먼저 소스를 뿌리고, 토스트를 먹어야 하는데 (토스트에 먼저 적었나 보다)
그러고 나서 우유를 마시라고 되어 있다. (우유 편지지가 마지막)
샌드위치에는 읽는 순서를 따로 적어 놓았다.
'계란, 치즈, 토마토, 상추' 순서이다.
상추에 토마토를 올리고, 치즈와 계란을 차례로 올린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읽으면 된다. (샌드위치 편지지에 적어 놓음)
이렇게 편지지를 뒤집으면 내용이 쓰여 있다.
이런 편지지는 어쩌다가 가끔 써야 재밌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귀찮아서 힘들었겠다.
이렇게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는데
자~ 이제 대망의 첫 번째 편지를 공개 하도록 하자!!
짜~잔!!
이것이 바로 내가 아내에게 준 첫번째 편지다.
1997년 4월 27일에 썼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이 편지를 아내에게 주기 위해 (이때 아내는 회사원)
주위 사람들에게 다 편지를 썼다.
아내에게만 편지를 쓰기에는 명분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내에게도 준 것이다.
아무튼 이 편지를 시작으로 아내와 나는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이 편지들이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해 준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편지들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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